아래 강연은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경철씨가 올해 아주대학교에서 “행복한 삶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영상입니다. 강연의 제목이야 어쨌든, 이 강연은 다른 매체나 기존의 다른 강연에서도 종종 되풀이되던 강연입니다.
본 강연을 보고 있으면 과연 저 W는 누구일까? 또, 그 백수 친구는 누구일까? 이런 의문이 저절로 듭니다. 강연이 끝나고 어떤 학생이 그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하구요. 이에 박경철 원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게 바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거죠.”라고 응수합니다. 그래도 누군지 궁금하시죠? ^ ^
원문: 박경철 강연 요약문
원본 링크: 나라경제 2007년 12월호 박경철씨 강연 관련 기사
다음은 “나라경제” 2007년 12월호에 실린 박경철씨의 강연 기사입니다.
내가 전문의 시험을 마치고 대전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친구가 서울의 한 경제 연구소에서 좋은 강연이 열리는데 와서 들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경제강연 들으러 서울 간다고 하면 병원에서 뭐라고 하겠느냐며 안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이 강연 안 들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미국서 MBA 마치고 온 백수 친구를 꼬셔서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강연이 시작되자 웅성웅성해졌다. 강연자가 찢어진 청바지에 UCLA 티셔츠에 뉴욕양키스 모자를 쓰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격식을 갖춘 강사를 기대했던 십여 년 전에 그런 복장은 가히 파격이었다.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고 강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30분이 채 못 되어 맨 앞줄만 남고 다 나갔다. 강연 내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연자가 강연의 주제를 적겠다면서 칠판에 ‘WWW’라고 적더라. 그리고나서는 다짜고짜 하는 말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 W의 세상이 온다는 것이었다. W 안으로 은행도 들어오고 국가기관도 들어오고, 이걸로 전쟁도 하고 핵무기도 만들어질 거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 친구가 망상장애이거나 테트리스 게임 만들다 미친 인간인 줄 알았다. 그 개념은 이해하겠지만 너무 황당하다, 어이가 없다, 이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자 백수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10만원만 꿔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깊은 감명을 받아서 강의하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말려도 말을 듣지 않기에 돈 얼마를 쥐어 주고 나는 다른 친구와 밥 먹고 술 마시고 헤어졌다.
그날 밤 백수 친구와 W(강연자를 지칭)는 새벽 2시까지 마포 주먹고기 집에서 얘기했다고 한다. 백수 친구는 W 다리를 붙들며 어떻게 하면 그 세계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통사정을 했고 W는 몇 가지 제안을 해준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한다.
다음 날 백수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월급 받은 전부를 내놓으라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대구에서 웹호스팅 회사를 차리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월급 전부를 다 내놓으라는 건 심하지 않느냐고 버텼지만 결국 월급의 90%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서울도 아니고 대구에서 시작한 전자메일 회사가 대구에서 일년 반 만에 250만의 가입자를 모집하고 99년 초에는 공중파 광고까지 했다. 그리고 골드만삭스에 980억인가의 지분을 받고 넘기게 됐다. 문제의 W는 자본금 600만원 정도를 들여서 강남에 작은 사무실 하나 얻어 사업을 시작했고 급기야 1조6천억의 자산을 가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참 많은 고통을 받았다. 스스로를 죽이고 싶었다. 친구가 잘 된 게 배 아파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해서였다.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얘기를 들었는데 왜 그 친구 눈에는 보이고 내 눈에는 안 보였을까.
그 해답은 제레미 러프킨의 저서를 읽다 발견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3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30만년 전에는 돌도끼가 전부였다. 그런데 30만년 동안 문명이 발달해 오는 과정에 있어 모든 인류 구성원이 문명발달에 기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 중 0.1%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고 망망대해에서 새로운 땅을 찾으면, 0.9%의 직관 있고 안목있는 인간이 그들을 따라가고 후원하고 건설해 온 게 오늘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러프킨은 나머지 99%를 잉여인간이라고 불렀다. 섭취와 배설을 반복하며 이산화탄소만을 발생시키는 존재로 봤다.
이런 현상이 90년대만 있었느냐,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은 10년, 길면 20년, 50년 주기로 반복되어 온 역사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다음 파도가 다시 쳐서 모래톱이 깎여나가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99%의 인간은 자기가 이해 못하는 세상이 펼쳐진 걸 보고 투기다, 거품이다, 광풍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한 다음에 거품이 가라앉으면‘어, 세상이 많이 바뀌었네’말하는 것이다.
1800년대 영국에서는 감자밭을 갈아엎고 양 목장을 만들어서 양을 길러 양털을 공급해 모직산업을 일으킨 산업혁명이 있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공학이 발달할 때,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개발할 즈음에 정유사업을 하던 록펠러는 자동차 사업의 성공을 예견하고 미국 전역에 주유소를 세워 주유소의 94%를 독과점해 버렸다. 1920년~40년 사이 모토로라는, 잠수함 설계에 있어 무전기라는 것이 필요하겠다 해서 무전기를 개발하고 납품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 리고 1970년대 반도체가 개발되는 것을 보고 퍼스널 컴퓨터를 만든 것과 1990년대 IT까지, 매번 새로운 0.1%의 W가 무엇을 만들어 내면 그것을 읽고 거기에 뛰어든 0.9%의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 문명의 파이를 계속해서 키워왔다. 그런 기회들은 매번 새롭게 주어져왔지만 나머지 99%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이다.
그 후 하루는 병원에서 원장님이 부르더니, “요즘 응급실에서 삐삐를 잘 안 받는다. 원성의 소리가 높다”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속으로는‘저도 사람인데 잠도 좀 자야지, 어떻게 매번 받겠습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삐삐가 울려도 옆에 전화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라고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갑자기 원장님이 시커먼 물건을 책상 위에 턱 내놓으며 “이건 니 꺼다”라고 하시는데 턱 보니 핸드폰이 아닌가. 그땐 발목 잡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이 병원을 위해 멸사봉공하겠다, 다시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그때 핸드폰이란 물건을 들고 압구정동에 가는 것은 요즘 페라리 오픈카를 타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친구들하고 만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걸 다 들고다니지 않겠느냐 했더니 친구들이 “어떤 바보가 이런 걸 사겠느냐, 재벌집 회장이나 졸부들이나 사는 거지”라고 핀잔을 주더라. 그 순간에 나는 벼락을 맞은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헨리 포드 자서전에 보면 포드가 1903년 처음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모두들 비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난한 이유는 기차는 백명이나 타지만 자동차는 4명밖에 못 타는데, 생산 비용은 기차 한 대나 자동차 한 대나 같으니 바보 아니냐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웃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을 비웃는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밖에 갈 수 없지만 자동차는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대륙을 내륙으로 연결하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 될 거다.”
결국 헨리 포드는 1907년에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큰 성공을 거두어 자동차산업은 마침내 미국을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
병원에 와서 핸드폰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다. 회사는 한국이동통신이고 제조회사는 모토로라라는 미국회사라고 했다. 나도 0.9%의 안목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SK텔레콤이 상장되고 그때 상장가격이 5만원 가량 할 때 용돈 100만원 쓰고 생활비 조금 쓰고 나머지는 다 그 주식을 사는 데 썼다. 이전 10년간 주식투자의 거래기술을 엄청나게 공부했지만 10년간 공부했던 거래기술을 다 무시하고 단지 ‘이것이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1999년말 주식을 전부 처분했다. 2000년 이후로는 새로운 W가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 했다. 몇 억원씩 샀으면 재벌이 되어 산하에 KDI 같은 연구기관을 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월급 받아 쓰고 남는 돈으로 투자를 했기에 재벌이 되지는 못했다. 이익을 본 금액이 많진 않았지만 투자와 거래를 처음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한 목적만으로 싸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사 비싸게 팔려고 시도하는 게 거래다. 거래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좀더 바보에게 조금 더 비싼 값으로 팔아넘기는 것일 뿐이다. 반면 투자란 통찰력과 직관의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딜레마가 생겼다. 2000년대가 시작되는데 내 눈에 2000년대의 W 버스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개똥철학 논리에 의해 W를 가상으로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전에는 기계의 힘으로 문명을 건설해 왔다. 문제는 사람이 기계를 만들긴 했지만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기계가 주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석면 마시고 쓰러지고, 이타이이타이병에 시달리고…. 인간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이게 기계 문명의 특징이다. 결정적인 건 이놈의 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계문명의 생산물은 비가역적이다.
2000년대 기계문명은 한계에 왔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웰빙이라는 화두다. 그 때 웰빙이 천년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천년을 여는 거대한 테마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는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면 이제는 사람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세상, 즉 사람의 세상이 열리는 것 아니냐, 이게 주역 하는 사람들에게는 후천개벽이 오는 거고, 미래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해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반성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느냐, 즉 사람의 시대가 오는 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2000년 이후 새로운 W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계와 대립되는 존재, 비가역적이 아니라 가역적인, 자연계에 작용을 가해 부가가치를 갖게 하면서도 그 부가가치가 다했을 때 쓰레기가 되지 않고 다시 자연계로 돌아가는 가역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답은 바이오·헬스케어, 인간을 즐겁게 하는 레저·엔터테인먼트, 비가역적인 쓰레기들을 만들어내지 않거나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되돌리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환경, 엔트로피를 증가하지 않게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체에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 더 주목했던 게 금융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이 중심되는 시대의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99년 말에 얻었던 일부의 성과를 모조리 투자해서 2001년도에 바이오 벤처 기업을 시작했고, 다른 데 엔젤투자를 몇 군데 병행했다. 유전자 진단 시약을 만드는 벤처기업은 드디어 성과를 내기 시작해 내년에 상장을 한다.
건강이나 레저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를 하시겠지만 금융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나는 울산 자동차 공장이나 포스코 공장에 강연하러 가보면 이 엄청난 시설과 자원을 소모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하루에 얼마나 벌지 좀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파이낸스 센터를 가면 여기 입주해 있는 회사들이 오늘 하루 거래해서 얻는 부가가치 크기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나는 순이익의 몇십 배, 몇백 배쯤 되겠다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기계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던 시대에서 사람의 머리가 부가가치를 내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인간 자체가 생산수단이 되는 시대. 이게 2000년대다.
내년 말쯤이면 다시 이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될 것이다. 2000년대 버스를 제대로 올라탄 것 같지만,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버스가 올지 지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다. 다음 버스가 안 보이면 내가 앞에 탔던 버스도 운좋아 잡은 것일 뿐 아니냐. 그래서 밤에 잠도 안온다.
오늘 강연의 결론을 내리자면 거래는 여러분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현장에서 생선 파는 생선장수 할머니한테 못 당한다. 거래라는 것은 거래 전문가한테 맡기면 된다. 대신 여러분은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자와 거래자를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은, 무엇을 사기로 결정하고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단순히 가격이나 정보와 관련된 게 아닌 당신이 가진 통찰, 직관이 얼마만큼 들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직관과 통찰의 비중이 50%를 넘을 때 당신은 거래가 아니라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50%를 넘지 않는다면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그런 거래는 할 필요가 없다. ■
중간중간 위트 가득한 입담에 백여 명의 청중은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0.1%의 인간과 99%의 잉여인간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두들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철 원장의 높지 않은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메시지는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료했다. 통찰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역사란, 부란 무엇인가, 인간 진보에 대한 성찰 없이 富와 가치를 논하지 말라는 그의 철학이 유쾌하게 웃는 중에 청중의 가슴 속을 묵직하게 울렸다.
본 강연을 보고 있으면 과연 저 W는 누구일까? 또, 그 백수 친구는 누구일까? 이런 의문이 저절로 듭니다. 강연이 끝나고 어떤 학생이 그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하구요. 이에 박경철 원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게 바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거죠.”라고 응수합니다. 그래도 누군지 궁금하시죠? ^ ^
당신은 1%인간인가? (시골의사 박경철의 KDI 강연)
원문: 박경철 강연 요약문
원본 링크: 나라경제 2007년 12월호 박경철씨 강연 관련 기사
다음은 “나라경제” 2007년 12월호에 실린 박경철씨의 강연 기사입니다.
W 버스를 놓치다
내가 전문의 시험을 마치고 대전의 작은 병원에서 근무할 때였다. 한 친구가 서울의 한 경제 연구소에서 좋은 강연이 열리는데 와서 들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경제강연 들으러 서울 간다고 하면 병원에서 뭐라고 하겠느냐며 안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이 강연 안 들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미국서 MBA 마치고 온 백수 친구를 꼬셔서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강연이 시작되자 웅성웅성해졌다. 강연자가 찢어진 청바지에 UCLA 티셔츠에 뉴욕양키스 모자를 쓰고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격식을 갖춘 강사를 기대했던 십여 년 전에 그런 복장은 가히 파격이었다.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고 강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30분이 채 못 되어 맨 앞줄만 남고 다 나갔다. 강연 내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연자가 강연의 주제를 적겠다면서 칠판에 ‘WWW’라고 적더라. 그리고나서는 다짜고짜 하는 말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이 W의 세상이 온다는 것이었다. W 안으로 은행도 들어오고 국가기관도 들어오고, 이걸로 전쟁도 하고 핵무기도 만들어질 거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 친구가 망상장애이거나 테트리스 게임 만들다 미친 인간인 줄 알았다. 그 개념은 이해하겠지만 너무 황당하다, 어이가 없다, 이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자 백수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10만원만 꿔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유를 물어보니 깊은 감명을 받아서 강의하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말려도 말을 듣지 않기에 돈 얼마를 쥐어 주고 나는 다른 친구와 밥 먹고 술 마시고 헤어졌다.
그날 밤 백수 친구와 W(강연자를 지칭)는 새벽 2시까지 마포 주먹고기 집에서 얘기했다고 한다. 백수 친구는 W 다리를 붙들며 어떻게 하면 그 세계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통사정을 했고 W는 몇 가지 제안을 해준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한다.
다음 날 백수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다짜고짜 월급 받은 전부를 내놓으라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대구에서 웹호스팅 회사를 차리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월급 전부를 다 내놓으라는 건 심하지 않느냐고 버텼지만 결국 월급의 90%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서울도 아니고 대구에서 시작한 전자메일 회사가 대구에서 일년 반 만에 250만의 가입자를 모집하고 99년 초에는 공중파 광고까지 했다. 그리고 골드만삭스에 980억인가의 지분을 받고 넘기게 됐다. 문제의 W는 자본금 600만원 정도를 들여서 강남에 작은 사무실 하나 얻어 사업을 시작했고 급기야 1조6천억의 자산을 가진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참 많은 고통을 받았다. 스스로를 죽이고 싶었다. 친구가 잘 된 게 배 아파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해서였다. 똑같은 자리에서 같은 얘기를 들었는데 왜 그 친구 눈에는 보이고 내 눈에는 안 보였을까.
그 해답은 제레미 러프킨의 저서를 읽다 발견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3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30만년 전에는 돌도끼가 전부였다. 그런데 30만년 동안 문명이 발달해 오는 과정에 있어 모든 인류 구성원이 문명발달에 기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 중 0.1%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제안을 하고 망망대해에서 새로운 땅을 찾으면, 0.9%의 직관 있고 안목있는 인간이 그들을 따라가고 후원하고 건설해 온 게 오늘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러프킨은 나머지 99%를 잉여인간이라고 불렀다. 섭취와 배설을 반복하며 이산화탄소만을 발생시키는 존재로 봤다.
이런 현상이 90년대만 있었느냐, 내가 아는 한 이런 일은 10년, 길면 20년, 50년 주기로 반복되어 온 역사다. 한 파도가 지나가면 다음 파도가 다시 쳐서 모래톱이 깎여나가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99%의 인간은 자기가 이해 못하는 세상이 펼쳐진 걸 보고 투기다, 거품이다, 광풍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한 다음에 거품이 가라앉으면‘어, 세상이 많이 바뀌었네’말하는 것이다.
1800년대 영국에서는 감자밭을 갈아엎고 양 목장을 만들어서 양을 길러 양털을 공급해 모직산업을 일으킨 산업혁명이 있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자동차 공학이 발달할 때,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개발할 즈음에 정유사업을 하던 록펠러는 자동차 사업의 성공을 예견하고 미국 전역에 주유소를 세워 주유소의 94%를 독과점해 버렸다. 1920년~40년 사이 모토로라는, 잠수함 설계에 있어 무전기라는 것이 필요하겠다 해서 무전기를 개발하고 납품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 리고 1970년대 반도체가 개발되는 것을 보고 퍼스널 컴퓨터를 만든 것과 1990년대 IT까지, 매번 새로운 0.1%의 W가 무엇을 만들어 내면 그것을 읽고 거기에 뛰어든 0.9%의 통찰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 문명의 파이를 계속해서 키워왔다. 그런 기회들은 매번 새롭게 주어져왔지만 나머지 99%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이다.
“누가 이걸 사”한마디에 벼락을 맞다
그 후 하루는 병원에서 원장님이 부르더니, “요즘 응급실에서 삐삐를 잘 안 받는다. 원성의 소리가 높다”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속으로는‘저도 사람인데 잠도 좀 자야지, 어떻게 매번 받겠습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삐삐가 울려도 옆에 전화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라고 핑계를 댔다. 그랬더니 갑자기 원장님이 시커먼 물건을 책상 위에 턱 내놓으며 “이건 니 꺼다”라고 하시는데 턱 보니 핸드폰이 아닌가. 그땐 발목 잡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이 병원을 위해 멸사봉공하겠다, 다시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다. (웃음) 그때 핸드폰이란 물건을 들고 압구정동에 가는 것은 요즘 페라리 오픈카를 타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친구들하고 만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걸 다 들고다니지 않겠느냐 했더니 친구들이 “어떤 바보가 이런 걸 사겠느냐, 재벌집 회장이나 졸부들이나 사는 거지”라고 핀잔을 주더라. 그 순간에 나는 벼락을 맞은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헨리 포드 자서전에 보면 포드가 1903년 처음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모두들 비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비난한 이유는 기차는 백명이나 타지만 자동차는 4명밖에 못 타는데, 생산 비용은 기차 한 대나 자동차 한 대나 같으니 바보 아니냐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웃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을 비웃는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밖에 갈 수 없지만 자동차는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갈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대륙을 내륙으로 연결하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 될 거다.”
결국 헨리 포드는 1907년에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큰 성공을 거두어 자동차산업은 마침내 미국을 일으키는 힘이 되었다.
병원에 와서 핸드폰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다. 회사는 한국이동통신이고 제조회사는 모토로라라는 미국회사라고 했다. 나도 0.9%의 안목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SK텔레콤이 상장되고 그때 상장가격이 5만원 가량 할 때 용돈 100만원 쓰고 생활비 조금 쓰고 나머지는 다 그 주식을 사는 데 썼다. 이전 10년간 주식투자의 거래기술을 엄청나게 공부했지만 10년간 공부했던 거래기술을 다 무시하고 단지 ‘이것이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1999년말 주식을 전부 처분했다. 2000년 이후로는 새로운 W가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 했다. 몇 억원씩 샀으면 재벌이 되어 산하에 KDI 같은 연구기관을 두었을지도 모르지만, 월급 받아 쓰고 남는 돈으로 투자를 했기에 재벌이 되지는 못했다. 이익을 본 금액이 많진 않았지만 투자와 거래를 처음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한 목적만으로 싸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사 비싸게 팔려고 시도하는 게 거래다. 거래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좀더 바보에게 조금 더 비싼 값으로 팔아넘기는 것일 뿐이다. 반면 투자란 통찰력과 직관의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다.
거래 아닌 투자를 하라
그러다 딜레마가 생겼다. 2000년대가 시작되는데 내 눈에 2000년대의 W 버스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개똥철학 논리에 의해 W를 가상으로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전에는 기계의 힘으로 문명을 건설해 왔다. 문제는 사람이 기계를 만들긴 했지만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기계가 주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석면 마시고 쓰러지고, 이타이이타이병에 시달리고…. 인간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이게 기계 문명의 특징이다. 결정적인 건 이놈의 쓰레기가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계문명의 생산물은 비가역적이다.
2000년대 기계문명은 한계에 왔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웰빙이라는 화두다. 그 때 웰빙이 천년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천년을 여는 거대한 테마라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는 기계를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면 이제는 사람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세상, 즉 사람의 세상이 열리는 것 아니냐, 이게 주역 하는 사람들에게는 후천개벽이 오는 거고, 미래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해 지구가 끝장나기 전에 반성이 일어나는 것 아니겠느냐, 즉 사람의 시대가 오는 거라고 보았다.
그래서 나는 2000년 이후 새로운 W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계와 대립되는 존재, 비가역적이 아니라 가역적인, 자연계에 작용을 가해 부가가치를 갖게 하면서도 그 부가가치가 다했을 때 쓰레기가 되지 않고 다시 자연계로 돌아가는 가역적인 상품을 만들어내는 산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답은 바이오·헬스케어, 인간을 즐겁게 하는 레저·엔터테인먼트, 비가역적인 쓰레기들을 만들어내지 않거나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되돌리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환경, 엔트로피를 증가하지 않게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대체에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 더 주목했던 게 금융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이 중심되는 시대의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999년 말에 얻었던 일부의 성과를 모조리 투자해서 2001년도에 바이오 벤처 기업을 시작했고, 다른 데 엔젤투자를 몇 군데 병행했다. 유전자 진단 시약을 만드는 벤처기업은 드디어 성과를 내기 시작해 내년에 상장을 한다.
건강이나 레저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를 하시겠지만 금융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으실 수도 있겠다. 나는 울산 자동차 공장이나 포스코 공장에 강연하러 가보면 이 엄청난 시설과 자원을 소모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하루에 얼마나 벌지 좀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파이낸스 센터를 가면 여기 입주해 있는 회사들이 오늘 하루 거래해서 얻는 부가가치 크기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나는 순이익의 몇십 배, 몇백 배쯤 되겠다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기계가 부가가치를 생산하던 시대에서 사람의 머리가 부가가치를 내는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인간 자체가 생산수단이 되는 시대. 이게 2000년대다.
내년 말쯤이면 다시 이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될 것이다. 2000년대 버스를 제대로 올라탄 것 같지만,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버스가 올지 지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다. 다음 버스가 안 보이면 내가 앞에 탔던 버스도 운좋아 잡은 것일 뿐 아니냐. 그래서 밤에 잠도 안온다.
오늘 강연의 결론을 내리자면 거래는 여러분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현장에서 생선 파는 생선장수 할머니한테 못 당한다. 거래라는 것은 거래 전문가한테 맡기면 된다. 대신 여러분은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자와 거래자를 구분하는 한 가지 기준은, 무엇을 사기로 결정하고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단순히 가격이나 정보와 관련된 게 아닌 당신이 가진 통찰, 직관이 얼마만큼 들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직관과 통찰의 비중이 50%를 넘을 때 당신은 거래가 아니라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50%를 넘지 않는다면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그런 거래는 할 필요가 없다. ■
중간중간 위트 가득한 입담에 백여 명의 청중은 연방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0.1%의 인간과 99%의 잉여인간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두들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철 원장의 높지 않은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메시지는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료했다. 통찰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역사란, 부란 무엇인가, 인간 진보에 대한 성찰 없이 富와 가치를 논하지 말라는 그의 철학이 유쾌하게 웃는 중에 청중의 가슴 속을 묵직하게 울렸다.
정리 길준범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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