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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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무원의 '삶의 질'이 최고

9월 30일자로 "공무원 '삶의 질'이 넘버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 내용을 살펴 보니 공무원, 샐러리맨, 자영업자의 월 평균 소득을 따져 봤더니 공무원 → 샐러리맨 → 자영업자 순이었고 가족 숫자도 마찬가지 순서였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더 많은 자녀를 가질 수 있고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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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자료 출처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데 어떤 방식을 통해 이런 결론을 도출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가 없으니 현재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 그리고 논란

어쨌거나 이 기사가 나고 나서 네티즌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다음 이미지는 <네이버 뉴스>에서 가져온 것으로, 공무원의 평균 소득이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고 성토하는 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그 외에 일반 샐러리맨으로 살아 가느니 더욱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공무원이 낫다고 하는 글도 제법 볼 수 있었다.

누구는 공무원은 돈만 써대고 나태하고 생산성이 없는 집단이라 욕을 하기도 한다. 젊은이가 비전을 가져야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에서 뭘 하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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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무원 열풍에 대한 짤막한 생각

자, 지금부터는 내가 생각한 내용을 마구 지껄이는 부분.

어쨌거나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IMF 외환 위기가 오기 전에는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 혹은 비전이 없는 사람 취급 당하기 일쑤였고, 오죽 할일이 없었으면 공무원이나 하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외환 위기 직후 많은 월급쟁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직장이 더이상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더 안정된 자리를 찾아 가기 시작했다. 반짝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고 정시 출퇴근이 보장되는 자리를 원하게 된 것이다.

여전히 이렇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윽박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는 공무원이 되기로 한 사람들에게 '꿈을 포기하고 편안한 삶만을 추구한다'고 무어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이 공무원이 되지 못하도록 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묻고 싶다. 과연 그 '꿈'의 실체가 무엇인지. 진실로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사장님'의 휘하에서 '사장님의 꿈'을 위해 몸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원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더 안정되고 더 풍요로운 삶이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신념을 위해 뛰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성공을 위해 뛰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한다.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 모르는 상황보다는 중간이라도 가자는 것이다.

현 상황도 다를 바 없다. 예전에는 일반 기업에 입사하나 공무원이 되나 어차피 나이 들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이왕 그렇게 일할 거라면 조금 더 힘들어도 조금 더 풍족한 삶을 누려 보자는 생각이 지배했던 것이다. 지금은? 일반 기업에서 일한다면 설령 수입이 조금 더 많다 하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된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전이나 현재나, 사람들의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상황이 달라진 것 뿐이다.



4. 이공계 기피 현상은?

최근 사람들의 입에 한참 오르내렸던 이야깃거리 중 하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대입에서 고득점을 올린 사람들은 이공계 대신 의·치대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이공계를 기피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다. 이공계가 무너지면 국가 산업의 근간이 무너진다고 이야기한다. 국내 기업에서 일하다가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려 하면 대기업의 경우 이직하려는 사람을 '산업 스파이'로 몰아붙이기 일쑤고, 그런 기사를 언론이 부추기고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면 네티즌의 댓글이 주루룩 달린다. "이런 매국노, 돌로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 사형제도 부활하자" 등을 비롯해 차마 말로 담기 힘든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글세, 과연 그렇게 이직하는 사람 중에서 수 조, 혹은 수십 조의 국익을 창출할 그런 어마어마한 정보를 빼돌릴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심지어는 떠나려는 회사의 한 해 매출보다도 큰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경우는 단순히 더 좋은 자리를 위해 떠나려는 사람들일 텐데 말이다. 그래, 물론 정말 산업 스파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무리 봐도 '아니올시다'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그 사람의 앞길을 막기 위한 '음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5. 강요하지 말라 —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다

공무원의 길을 택하려는 사람들이나 이공계를 떠나려는 사람들 혹은 더 나은 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길. 제발. 그들 모두에게는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대기업 대신 공무원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설령 위 기사가 거짓이라서 공무원의 수입이 더 적다 하더라도) 더 안정되고 편안한, 그리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원한 것이다. 이공계 대신 의·치대를 선택한 사람들은 노력한 고생에 비해 지나치게 적었던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죽어도 이공계를 버리지 못하겠다, 이 길은 나의 꿈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외국계 기업을 찾는다면, 그것도 막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난 것이다. 혹은 외국계 기업이 더 나은 보상을 해 주고 혹은 더 편안한 근무 환경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지 마라.

근본적으로 보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개인에 대한 '처벌'이나 '희생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국가가 요리하기 쉬운 집단을 대상으로 현대판 노예로 부려 먹으려는 그러한 살인적인 법률이 아니라, 꿈을 좇는 자들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현실적인 보상을 원하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보상이 뒤따르도록 뒷받침해 주는 그런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뛰어난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산업 스파이로 몰아 세우며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것 아니라 더 나은 대가로 보상해 주면 된다. 아니, 회사의 매출보다도 큰 이익이나 손실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깟 돈 몇 푼 더 준다고 회사에 가해지는 부담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공계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정말 이공계 인력이 그렇게 필요하고 절실하다면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지 않겠는가? 기업체에서 정말 필요한 인력이 없다면 돈을 더 주고 데려다 쓰면 된다. 의사나 치과의사보다 대기업 이공계 연구원이 돈을 훨씬 더 많이 버는 상황에서도 이공계 기피현상이 생길 수 있을까? 이를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IT 계열 등 이공계 산업 현장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떠나려 한다면, 그들에게는 좀더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개선에 힘써야 한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그 바닥에 묶여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사람들로 보이는가? 그런 사람 하나 떠난다고 회사가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당장은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짐을 싸서 떠난다면? 그러면 외국에서 인력을 데리고 오면 된다고? 그런 대답이라면 이미 이공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 아님을 기업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 된다. 정말 대한민국이 이공계를 필요로 한다면 그런 대답을 하지는 못할 테니까. 국익을 쥐락펴락하는 국가 기밀을 외국 인력에게 맡기겠다고 대답한다면, 지금까지 산업 스파이로 몰아 세워진 사람들만 불쌍한 꼴 당한 것이다. 어쨌거나 정말 이런 인력이 필요하다면 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할 시스템을 만들라. 괜히 밥먹듯 야근이나 시키면서 일터에서 사람 쓰러지게 만들지 말라.

공무원,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일반 직장인에 비해 돈도 잘 번다. 그런데 너무 나태하고 혈세를 물 쓰듯 마구 써 댄다고? 그렇다면 이들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 공무원 사회에도 경쟁 구도를 도입하고, 사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업무 성과가 부실한 사람들에게는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그들이 다시 취업하는 데 나이나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뒷받침해 주면 된다. 그들에게 능력이 부족하다면 재취업할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도록 직업 교육이나 실직에 관련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주면 된다.


이런 말이 현실을 무시하고 지껄이는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펼친 일들의 결과가 어떤 귀결을 맺었는지 돌이켜 보기 바란다. 개발 우선의 정책이 빚은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건, IMF 외환 위기를 돌아 보라. 외환 위기 사태 이후 기업의 재정이나 운영이 투명해지고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그건 이미 그렇게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뒤늦게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수습에 나섰기 때문이다. 기업 재정이나 운영이 불투명한 것이 비정상적인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정말 장기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에 대해 고민해야지 지금 당장의 문제에 급급해서 사태를 더욱 망가뜨리지 말길 바란다. 지금 이야기해야 할 것은 희생에 대한 강요, 혹은 개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지금 이야기해야 할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좀더 나은 여건에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면서 어떻게 국가가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바로 제대로 된 시스템의 구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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