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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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과 목요일, 특히 수요일은 정말 추웠죠? 이게 봄인지 겨울인지 모를 날씨. 하필이면 그때 저희 팀이 대천으로 워크샵을 갔었답니다. 아무튼 쓸데없는 이야기는 넘어가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수요일 밤, 대천에서 악몽을 꾸고 말았답니다. 평소에 워낙 곤히 자는 편이라 꿈 같은 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기억에 남네요.

꿈 이야기를 하자니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네요. 지난 해 10월, 분당에서 대전으로 직장을 옮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1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해야 했습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부가 되기로 한 것이지, 주중에는 마음껏 놀다가 주말에 데이트하는 사이로 남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다음으로는 회사 재무 상황입니다. 2009년 연초, 우연히 회사 재무 상황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제가 재무제표에는 영 까막눈이었지만 주변 동료들이 친절히 알려 주더군요. “그러니까, 이 회사는 4월이나 5월에 큰 위기를 맞는다는 거지” 이렇게 말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상보다는 조금 늦게 위기가 시작됐습니다만.

세 번째는 회사 업무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업무를 많이 벗어났거든요. 뭐, 많은 IT 업계 사람들이 겪는 문제겠지만 야근과 주말 특근이 당연시되고 이에 대한 보상은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었고, 기존의 지식이나 경력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 배치나 잦은 부서 간 이동, 상하 소통 부재, 미숙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매니지먼트까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매듭에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이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 회사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갔던 것은 나름대로의 장점과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문제는 그러한 장점을 덮을만큼의 단점이었다는 것이구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려 하던 즈음부터 회사 재정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제가 그만둔 이후에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저도 조금만 늦었다면 그 여파를 고스란히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꿈 얘기로 돌아가면, 그렇게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던 회사가 꿈속에서는 어느 새 정상화된 겁니다! 그리고는 예전에 한솥밥을 먹던 퇴직자들을 하나 둘 불러 모읍니다. 다시 한번 즐겁게 일해 보자는 거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저보다 먼저 회사를 떠났던 ‘ㅈ’, ‘ㅅ’, ‘ㅂ’, ‘ㅇ’ 등등 낯익은 얼굴이 모두 모여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시 예전처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반갑던지요.

새로 모인 사람들이 어떤 부서에 배치될지에 관한 공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마치 대학 합격자 명단을 공개하듯 벽에 하얀 전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재입사자 명단과 배치될 부서가 표시돼 있었거든요. 놀랍게도 저를 포함해 함께 복귀한 동료들 모두가 같은 부서에 배치됐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부서장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요···.

그 다음 순간, 저는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다시 모인 우리를 반긴 건 다름 아닌 ‘ㄱ’이었거든요.



참, 제가 회사를 옮긴 이유 세 가지를 말씀 드렸는데요, 거기에 조그맣게 한 가지 이유를 더할 수도 있겠네요. 제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한 사람, ‘ㄱ’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서의 장을 맡고 있었는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아니 마주치면 주먹을 한 대 날려 주고 싶은 그런 인간입니다.

사실 저는 병역을 현역으로 복무한 것이 아니라 대체 복무를 했기 때문에 현역으로 전역한 분들의 마음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제대하고 나서 다시 입대하는 꿈을 꾼다는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더군요.



묘한 꿈이었습니다. 제게 이전 직장은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좋은 추억과 잊고 싶은 기억이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고, 입사 당시의 꿈과 기대가 절망과 좌절로 바뀐 곳이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과 죽어서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을 동시에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죽어서도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꿈속에 나타나는군요. 참, 질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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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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