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까 화법

rss
지난 월요일(5월 28일)부터 수요일(30일)까지 3일 간 예비군 훈련을 다녀 왔다. 예비군 훈련 일정을 예비군 홈페이지에서 선택하라길래 들어가 봤더니 5월, 6월, 7월 일정이 있었다. 아무래도 6월이나 7월에 훈련을 받게 되면 5월보다 훨씬 무덥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싶어서 5월 일정으로 선택했다.

사실,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대체했기 때문에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군 생활은 4주 동안의 훈련소 생활이 전부이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은 올해가 처음이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분위기 파악을 먼저 해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바로 "다나까 화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군대식 화법이라면 "···하지 말입니다"로 대표되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에 2002년의 훈련소 생활에서 조교들이 분명히 말하기를, "···하지 말입니다"와 같은 표현은 부대 내에서도 쓰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표현으로서 절대 사용하지 말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다나까 화법"이란 말끝을 "다"나 "까"로 끝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즉, "···했어요?" 대신 "···하셨습니까?", "···했어요" 대신 "···했습니다"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정중한 표현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나까 화법 = 군대 화법"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회 생활에서도 정중한 표현을 위해 이런 화법을 많이 구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잘못된 사용에 있다고 본다. 무조건 "다"나 "까"로 문장을 맺으려다 보니 억지 문장을 만드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번 예비군 훈련에서 놀란 부분이 이런 점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배님들, 2열로 맞춰 서십니다."

이건 뭐, 생전 들어 보지도 못했던 표현이 등장했다. 그냥 "2열로 맞춰 서십시오"를 이용하거나, 그게 "다"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서 문제가 된다면 "2열로 맞춰 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야 할 문장인데 전혀 부탁과는 상관 없는 문장이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훈련을 받는 3일 내내, 그리고 하루 종일 이런 문장이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 더욱 신기한 것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 무슨 의미인지 곧장 알아차리는 예비역들이 아닐까?


엄격한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 정중한 표현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제대로 의미 전달조차 되지 않는 문장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많이 이용하는 이모티콘이나 말의 앞뒤를 잘라 축약해 쓰는 표현 등은 언어 파괴라고 일컬으면서 정작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거쳐 가야만 하는 군대에서의 언어 파괴는 너무나도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찰떡파이 통으로 만든 필통  (0) 2007.10.02
청첩장  (0) 2007.09.21
수도권 교통 정보를 알고 싶을 때  (0) 2007.09.19
내 몸의 리듬이 깨지면  (0) 2007.09.18
예비군, 삽질, 참호  (5) 2007.09.12
월요일  (0) 2007.05.07
동생과 한 잔  (0) 2007.05.06
미쳐라 열풍  (0) 2007.04.16
온라인 세탁소, 온클리닝  (2) 2007.04.14
첫 회식  (0) 2007.04.13
Posted by EXIFEE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