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이야기 그리고 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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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이 된 초등학교 6학년 유재석

어제 포털 사이트에서 이것 저것 인터넷 기사를 뒤적이고 있는데, 국민일보 쿠키뉴스에서 “유재석,초6 ‘유반장’ 시절 가슴 찡한 사연 화제”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시에는 ‘국민학교’였겠지만). 기사를 다시 보니 원문은 인터넷 유머 사이트인 <오늘의 유머>에 지난 1일 올라 온 “유재석씨 어머님”이라는 글이었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유재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급 반장이 되었는데, 육성회 기부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유재석의 어머니는 그 대신 매일 학교 화단과 교문을 청소했다는 것이다. 이 글의 진짜 출처는 현재 폐간된 <좋은 친구>라는 잡지이며, 아래는 그 내용이다.


반장이 되면 한 턱 쏴야 하는 지금의 고등학교

한편 오늘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는 “피자와 치킨 그리고 학교”라는 글이 올랐다. 글쓴이가 학급 반장이 되었는데 급우들이 치킨이나 피자를 사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를 한참 지나서 요즘 고등학생들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몰라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너무나도 그런 일에 무심했던 것일까?



노골적인 요구가 거침없었던 그때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른 옛 아련한 기억.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1988년. 대한민국은 서울올림픽 개최 준비로 여념이 없던 그때. 길거리를 지나가면 1984년에 만들어진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1988년 조용필 10집 앨범의 “서울 서울 서울”이 메아리치던 그때.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군사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벌어지던 그때.

학교에서 어떤 테스트가 있었다. 한 학급이나 한 학년 대상이 아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였는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나빴던 것인지 내가 제법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도 낮은 것보단 높은 쪽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한동안 그 일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서의 일이다.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따로 집에다 잘 알리고 하는 성격이 아닌데, 어머니께서 그 일에 대해서 제법 잘 알고 계시는 것이었다. 나중에 동생을 통해서 따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담임이 집에다 그 일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부모 모임에도 전혀 나가지 않으시던 분이셨고, 그때 나는 학급 반장이 아니라 부반장이었기에 학급에 관련된 일로 연락할 일도 없었던 터라 갑작스런 연락에 조금 놀라셨던 모양이다. 연락을 받고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 갔더니 담임이라는 작자가 이러이러한 사정에 의해 당신 아들이 이번 테스트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돈 얼마를 쓰면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건 일찌감치 준비해야 한다, 이러면서 촌지(寸志)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말을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순진한 생각이었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힘들었던 집안 형편 때문에, 매해 거듭되는 가정 형편에 대한 조사를 보면서, 이런 일이 나한테는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건이 벌어지고 10년도 훨씬 지나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한참이 지나서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과거 있었던 일에 대해 주관적인 소회 같은 건 없다. 어느 날 담임에게 이유없이 맞았다거나 하는 기억도 딱히 남아 있지 않고. 사실 거의 20년이나 이전인 당시에는 사소한 이유로도 교사의 체벌이 잦았던 시기이기에 몇 대 맞아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곱씹어 이야기하는 것도 웃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때 어머니께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다면, 혹은 내가 좀더 일찍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더라면, 이런 건 아무런 의미 없는 가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은 든다. 지금 어딘가에도 교사의 탈을 쓴 하이에나 같은 인간이 온갖 탐욕으로 버무려진 더러운 입으로 지저분하게도 돈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덧붙이는 말

국어사전에서 촌지(寸志)라는 말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처음부터 나쁜 의미로 쓰이던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돼버렸을까?
촌지 (寸志)
[명사] | 발음〔촌ː–]
  1. =촌심(寸心).
  2.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촌의(寸意)·촌정(寸情).
    • 어머님의 생신 날 찾아뵙고 촌지를 드렸다.
  3.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 흔히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을 이른다.
    • 그 기자는 촌지를 받긴 했지만 나중에 조용히 되돌려 주었다.
    • 나는 받아서 모아만 놓고 아직 어떻게 쓸지를 모르고 있는 촌지를 꺼내서 그 총액을 셈해 보기 시작했다. ≪박완서, 꿈을 찍는 사진사≫
  4. [북한어]‘촌심’의 북한어.


참고 문헌
  1. 오늘의 유머, “유재석씨 어머님”.
  2.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재석,초6 ‘유반장’ 시절 가슴 찡한 사연 화제”.
  3. “피자와 치킨 그리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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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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