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병천면] 충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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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천순대를 처음 만난 건 제가 분당에서 첫 직장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일터 근처에 병천순대를 파는 집이 있었는데, 직장 동료들이랑 함께 가서 같이 모둠순대나 술국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야식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면만 잔뜩 들어간 순대만 먹다가 야채와 돼지피, 당면이 버무려진 병천순대를 먹으며 ‘아, 이런 순대가 있구나!’하고 놀랐었죠.

그리고 시간은 한참 흘러 저는 대전에 터를 잡았고, 또다시 동네 떡볶이 집이나 아딸과 같은 프랜차이즈, 길거리 1톤 트럭에서 파는 순대를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는 병천순대를 판매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집 근처에서 병천순대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상호가 <병천아우내순대>였습니다. 가게에서는 재료인가 순대를 병천에서 직접 가져온다고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병천이 지명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디에 있는 곳인지 궁금해지더군요. 검색해 보니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 열사가 3·1 만세 운동을 하던 바로 그곳이 병천순대의 원조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천안이면 대전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어느 곳이나 한 군데 유명한 음식점이 생기면 그 일대에 비슷한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듯 그곳에도 병천순대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 중 원조집은 <청화집>이라는 곳이라네요. 1968년부터 순대를 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가 찾은 곳은 청화집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충남집>이라는 곳입니다. 위치도 청화집 바로 맞은편으로 두 가게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날도 어둑어둑했습니다. 가게 옆에 전용주차장이라고 적힌 공간은 있는데, 주차 가능한 차량은 단 두 대뿐입니다.


가게 입구를 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순대를 만드는 아주머니들이 보입니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원조 충남집 순대”라는 글귀가 적혀 있네요. 가게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위치가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게 아니라 차량이 없으면 접근하기 힘든 곳임을 감안하면 다들 이곳 순대를 맛보기 위해 멀리서 찾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운터에 놓인 <전통문화의 집 — 순대음식 요리> 상패. 메뉴는 간단했습니다. 순대국밥 6,000원, 순대 한 접시 10,000원.


가게에서 먹을 상황이 아니라서 한 접시를 포장해서 나왔습니다. 주문 시 포장할 거라 얘기했더니 썰어서 줄지 그냥 줄지를 묻더군요. 썰어 달라고 했습니다. 차에서 열어 보니 예상보다 훨씬 푸짐한 양에 놀랐습니다. 두 사람이 배불리 먹을 정도는 되겠더군요. 막 쪄서 나온 순대라 따끈따끈한 정도가 아니라 뜨거워 입천장이 델까 후후 불어가며 먹어야 했습니다.


푸짐한 내용물. 사진만 봐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순대와 함께 나무젓가락 서너 개, 소금, 새우젓이 함께 옵니다. 소금과 새우젓은 각각 두 개씩 넉넉하게 주더군요. 매장에서 주문하면 김치나 청양고추도 내주는 것 같더군요. 처음에는 한 접시만 포장해서 가려고 했는데 너무 맛이 좋아 한 접시 더 포장해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찍은 사진입니다. 순대를 산 지 한참이 지나 따끈따끈함이 사라졌는데도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살아 있습니다. 많이 짜거나 하지 않아 밥 반찬으로도 괜찮았습니다.


두 접시 중 하나는 썰지 않은 상태로 사 왔습니다. 나중에 먹을 거라고 했더니 그러면 썰지 말고 통째로 보관하다가 끓는 물에 데쳐서 먹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큰 기대 없이 찾아갔던 곳인데, 그 맛에 푹 빠지고 돌아왔습니다.





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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