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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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삼십 대 중반의 나이. 그러고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라디오를 참 많이 들었네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팝 위주의 음악 시장이 가요 위주로 개편되기 시작하던 그 시절. 지금은 잊혀진 “우리는 하이틴”, “고스트 스테이션”, “FM 음악도시”, “FM 영화 음악 정은임입니다”···. 그 시절 허전했던 제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때로는 밤샘 벼락치기 시험 공부를 하며, 때로는 만화책을 들고서 키득거리며, 때로는 불을 끄고 깜깜해진 방에서 홀로, 그렇게 저와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한동안 제 삶에서 라디오는 지워졌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요? 다시금 제 삶에 라디오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아니군요. 라디오 소리에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ㅎㅎㅎ 원래 잠이 많은 데다 일찍 잠들지 않고 늦게까지 놀다 새벽에 잠드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침 출근길은 저에게 항상 힘이 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아침 10시고 11시고 계속해서 자고 싶지만 먹고 살려다 보니(쿨럭~ ㅋ) 자고 싶을 때에도 일어나야 하는군요. 알람을 맞춰도 신경도 안 쓰고 자는 저에게도 귓가에 맴도는 라디오 소리는 기상 나팔이 됩니다.

아침이면 아내가 항상 라디오를 켜요. 그리고는 노랫소리가 흘러 나오죠. “뎅뎅뎅 뎅뎅뎅뎅 이숙영 이숙영 그대가 좋아요~ 아침부터 즐거워져요~ ♪”, 그건 바로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는 목소리! SBS “이숙영의 파워 FM”입니다. 50대 초반(1957년생)의 나이, 그럼에도 누구보다 기운찬 모습!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 딱이죠! 숙영 누님이 단잠에 빠진 저를 현실로 유혹합니다. 방송 중 개인적으로는 조간 브리핑 시간이 마음에 들어요. 그날 그날 신문 기사나 가십 등을 간단하게 추려서 들려 주거든요. 방송 소리에 잠에서 깨고 식사를 하고, 회사로 운전하면서 듣는 방송입니다.




출근하고 나면 라디오 들을 일이 거의 없죠. 주말이 돼서야 간간이 방송을 듣기는 하지만 주말에는 주로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 그마저도 자주 듣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퇴근하고 나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는 주로 제가 담당합니다. (아내는 제가 설거지를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한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합니다. 또 모르죠. 이러다 어느 새 실력이 퀀텀 점프할지 'ㅂ')=v) 요즘 설거지를 하면서 듣는 방송이 있답니다. 바로 MBC “노홍철의 친한 친구”랍니다.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넘치는 기운으로 퇴근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방송이죠.


원래는 노홍철 대신 소녀시대의 태연이 진행을 해서 “태연의 친한 친구”라는 이름의 방송이었죠. 이전 직장 다닐 때 태연을 좋아해서 이 방송을 열심히 챙겨 듣던 종훈이가 문득 생각나네요. ㅎㅎ


노홍철은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송인 가운데 한 사람이거든요. (아, 그렇다고 제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 이래 봬도 결혼도 했거든요. 위장 결혼 절대 아닙니다 –ㅁ–) “무한도전”을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건데, 노홍철은 정말 위대한 방송인입니다. [–ㅅ–] 추격전이 펼쳐질 때의 그 번득이는 눈빛과 재치, 아이디어! 여담이지만, 전 매번 노홍철을 더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ㅁ+

아, 이야기가 잠시 안드로메다로 빠졌었네요. 어쨌거나 “노홍철의 친한친구”는 방송을 진행하는 노홍철만큼이나 튀는 방송입니다. 청취자와의 전화 통화는 언제나 깔끔하고 쿨하죠. “뿅!” 한 마디면 그냥 끝입니다. 왜냐하면,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 해야 하잖아요. 청취자에게 퀴즈를 내고서 오답을 유도하기도 하구요 — Goodbye by Jessica. 튀는 진행자만큼이나 튀는 방송이죠.

하지만 제가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방송의 클로징 멘트랍니다. “여러분, 어디서 뭘 하시든지 꼭!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노홍철의 친한 친구”가 끝나면 이어서 “김범수의 꿈꾸는 라디오”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보통 이 방송을 듣지 않아요. 왜냐하면,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설거지를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이 방송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주말, 그것도 일요일 밤에요. 부모님 댁이나 처가에 갔다가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켜면 보통 이 시간대거든요. 이웃 방송국에서 스윗소로우가 진행하는 방송이 있기는 한데, 진행자가 많아서인지 너무 소란스러워 조용히 들을 수 있는 방송으로 가게 되더군요. 일요일에 이 방송을 들을 때면 참 좋은 게, “더 뮤지션 시즌 2”라는 요일 코너 때문입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나와서 특정 뮤지션을 골라 그의 음악만으로 한 시간을 채우는 코너이거든요. 따뜻하고 포근하게 주말을 마무리지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좋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방송되는 KBS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이 있네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변태 방송이죠. ㅋㅋ 이 아래에 있는 홈페이지 사진을 좀 보세요. 저 발그레한 볼하며···. =ㅅ=

대전에는 KBS 2FM이 방송되지 않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경우는 없구요, 간혹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듣고 있어요. 그 대신, 보통 홈페이지에서 MP3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듣는 편이에요. 방송된 음악은 삭제된 채로 들어야 해서 아쉽긴 하지만 변태 방송의 멘트는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위로는 되네요. 그리고 이 방송은 사실은 저보다 아내가 더 좋아한답니다. 제 아내가 학창 시절에 유희열과 김동률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뱃속에 있는 아기 태명도 “희열”이에요. ^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 코너는 금요일 밤(정확하게는 토요일 자정부터 1시까지)에 방송되는 “이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입니다. 신작 영화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지요. 영화평과 함께 말이죠. 이 코너 덕분에 알게 된 괜찮은 영화도 제법 있네요. 최근 몇 주 동안 KBS 파업 때문에 이 코너가 방송되지 못했는데, 은근히 아쉬운 마음이 들더군요. ㅎㅎ



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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