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들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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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들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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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가방 들어 주기”라고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번화가에서 여자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 주는 다정다감—남자가 보기에는 아주 볼썽 사나운—한 남자친구의 이미지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이런 모습일까요? 등교길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몇 명이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책가방까지 모두 들어 주는 모습 말이죠. ㅎㅎ


추억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답니다. 바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방을 대신 들어 주던 모습 말이죠. 사실, 10여 년 전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무거워 보이는 가방이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 혹시 기억 나시나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만원 버스가 도착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버스에 오르고 싶지 않은데, 저걸 놓치면 지각입니다. 5분 늦었다고 교문 앞에서 벌을 서고 운동장을 뛰고 싶지는 않네요. 어쩔 수 없이 버스 앞문으로 다가갔더니, 이런! 사람이 너무 많네요. 버스 기사 아저씨는 버스 앞문 밖으로 손을 쭈욱 뻗더니 동전만 받고서 뒷문으로 타라고 합니다. 사람들을 밀쳐내고 뒷문으로 올라 탑니다. 가까스로 마지막으로 탔네요. 뒷문이 닫히는 찰나, 등에 맨 책가방에 뒷문이 걸릴 판입니다. “아저씨! 잠깐만요!”

버스에 오르기는 했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네요. 나보다 한 계단 높은 곳에 선 녀석의 책가방이 제 얼굴을 짓누릅니다. 몇 정거장 지나 인근 여학교의 학생들이 우루루 버스에서 내립니다. 향긋한 샴푸 향을 내뿜던 예쁜 여학생이 버스에서 내리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이 조그만 버스에서 내가 발디딜 땅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죠.

‘휴우, 이제 살았네’ 이렇게 한숨을 내쉬던 순간, 내 앞에 앉아 계시던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생, 무거워 보이는데, 가방 이리 줘.” 이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고생은 한 순간 사라지는 듯합니다. ‘아! 지금까지 제가 착하게 살았던 보상을 이렇게 받는 거군요!’


아쉬움

이런 풍경을 이제는 볼래야 볼 수가 없네요. 예전보다 학생들의 가방이 가벼워져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가방의 모양이 크게 달라져 이제는 들어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런 디자인으로 바뀐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삭막해져만 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일까요?

어쨌거나, 예전엔 가방 들어 주기로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어요. 문득 떠오르는데, 어떤 분이 제 가방을 들어 주셨는데, 제가 선 채로 잠이 든 적이 있었어요. -_-; 그 바람에 제 가방을 들어 주시던 분이 버스에서 내리시면서 고맙게도(!) 저를 깨워 주시고 간 적이 있었네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반대로 제가 가방을 들어 드렸는데, 제가 앉아 있던 채로 잠드는 바람에 가방 주인이 저를 깨워서 다시 가방을 받아 간 적도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다 제가 문제였네요. -_-ㆀ


급 마무리

최근에는 버스에서, 그리고 지하철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요. 어쩌면 제가 나이가 들어서 옛것에 대한 향수가 발동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급 마무리합니다. ㅋ


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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