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문의문화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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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스를 보니 오늘 중부 지역이 40여 년만에 4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네요. 지난 해 12월 6일, 그날도 엄청나게 쌀쌀한 날이었습니다. 오전 중에 계속 집에 머물다가 오후가 되자 집에서 가까운 곳 어디라도 가자고 해서 나섰습니다. 목적지로 정한 곳은 <청남대>였습니다. 대전 유성에서 청남대까지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회덕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다시 청원분기점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를 타고 문의 나들목까지 간 후 국도를 타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제 자세가 너무 안일했나 봅니다. 일단 승용차로 청남대까지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내려서 셔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나 보더군요. 게다가 청남대는 일일 입장객 수에 제한이 있다는군요. 겨울이라 날이 쌀쌀하니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이미 일일 정원이 넘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다행히(?) 저와 같은 안일한 자세로 찾은 사람이 몇 명 더 있어 위안이 되더군요. =ㅅ=

계속 고속도로만 타고 오다 보니 재미도 없고 해서 대청댐이나 한번 보고 가려고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문의 문화재 단지”라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진이 작아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군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문의문화재단지 (文義文化財團地)
소재지: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청원군은 금강과 미호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지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해 살아온 곳으로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문의는 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으로, 신라때는 연산군(延山郡)으로 불려지다가 고려시대부터 문의현(文義縣)이 되었다.

문화재단지가 자리잡은 양성산(養性山)에는 신라 자비왕 17년(474)에 축성한 산성이 있다. 이 산성에서 고려와 후백제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성안의 연못에서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전해온다.

문화재단지는 1980년도 대청댐 건설이 계기가 되어 1992년 시작하여 1999년에 완공하였다. 단지 안에는 문의면 가호리 고인돌을 비롯한 선사유적과 옛 문의현의 객사(客舍)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문산관(文山館)을 이전 복원하였다.

또한 충청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문의면 노현리 민가(제220호), 부용면 부강리 민가(제221호), 문산리 석교(제222호), 낭성면 관정리 민가(민속자료 제38호)와 그 외에 양반 가옥, 주막집, 토담집, 대장간, 성곽 등을 재현해 놓았으며, 서덕길(徐德吉) 효자각, 김선복(金善復) 충신각을 원형대로 옮겨 세우고 문의지역의 옛 비석(碑石)들을 모아 비석거리를 조성하였다.

문화유물전시관에는 문의면 구룡리 두루봉동굴에서 발견된 흥수아이 원형복원 전시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관, 선사시대의 주거지, 종교·문화, 생활 모습 등을 재현하였다.

이 밖에도 2004년 준공된 대청호미술관은 1, 2층의 상설 및 기획 전시실을 비롯하여 3층의 라운지 룸, 그리고 최첨단 보안시설과 수장고를 갖추고 있는 최신식 건물이며, 주변에 애국지사조형물과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아마도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민가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한 것 같습니다.

날이 쌀쌀해서인지 광활한 주차장에는 차량이 불과 다섯 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날이 포근해졌으니 그때처럼 조용한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죠?


입구인 양성문과 그 성곽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오르막이 이어져 있습니다. 왼쪽편에 매표소가 있습니다.


양성문에서 전방으로 계속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서덕길 효자각입니다. 효자각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민가와 문산관, 박물관으로 갈 수 있고 왼쪽으로 가면 조각공원과 미술관을 볼 수 있습니다.


효자각 바로 오른쪽편 오르막길에 놓인 고인돌입니다.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민가가 보이는군요.


아마도 주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도 민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초가가 아닌 기와 지붕 건물인 것이 색다르네요.


양반가의 모습입니다. 원래는 상당히 부유하고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의 집이었다는 설명을 본 것 같은데,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그냥 자그마한 기와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박합니다.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의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지금은 민화체험관으로도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문의 지역의 옛 비석을 모은 비석 거리입니다. 안타깝게도 제 비천한 한자 실력 탓에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네요.


여막(廬幕)입니다. 상주가 탈상할 때까지 묘소 가까이에 지어 놓고 거처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 현종(顯宗) 7년(1666년)에 세워진 문의현(文義縣)의 객사(客舍)인 문산관(文山館)입니다. 원래 대청댐 수몰 지역에 위치했다는데, 1979년 문의면에 옮겨 지었다가 1996년 문의 문화재 단지로 다시 옮겨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문산관 바로 왼쪽편에 소나무와 함께 장승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문산관을 지나 유물 전시관을 거쳤습니다. 계속 쌀쌀한 곳에서 보내다 포근한 박물관에 들어가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박물관 앞에 조그만 돌다리(석교, 石橋)가 놓여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는데 돌아와서 보니 고려시대에 만든 돌다리라고 하는군요.


유물 전시관을 지나 아래로 내려오면 문화재 단지 입구 쪽으로 오게 됩니다. 입구를 거쳐 들어오면 오른쪽에 가장 먼저 보이는 돌무더기가 다시 우리를 반기네요.


효자각을 거쳐 이번에는 왼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양쪽으로 조각이 늘어서 있습니다. 조각 공원입니다. 너무 추워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도 못했네요.

조금 더 들어서면 “애국지사 일곱 분의 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 선생입니다. 신채호 선생의 출생지가 조선 충청남도 대덕군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이라는군요. 나머지 여섯 분은 신홍식(申洪植, 1872년 3월 1일 ~ 1939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 출생), 손병희(孫秉熙, 1861년 4월 8일 ~ 1922년 5월 19일, 충청북도 청원 출생), 한봉수(韓鳳洙, 1883년 4월 18일 ~ 1972년 12월 25일, 충청북도 청주 출생), 권병덕(權秉悳, 1868년 4월 25일 ~ 1944년 9월 15일, 충청북도 청원 출생), 신석구(申錫九, 1875년 5월 3일 ~ 1950년 10월 10일, 충청북도 청원군 출생), 신규식(申圭植, 1880년 음력 1월 13일 ~ 1922년 양력 9월 25일, 충청북도 청원 출생)으로, 다들 충청 지역 출신 인물들입니다.

오후 5시 30분이 가까워 해가 저물어 가고 날이 쌀쌀해 서둘러 미술관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시 중인 작품을 교체하는 중이라 관람은 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뜻밖에 좋은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날이 조금만 더 포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 되니까요. 이번 주말에는 날씨가 평년 기온을 되찾는다고 하니, 이곳에도 사람들 발길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Posted by EXIFEE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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